[칼럼] 김연아를 회상하며...

김지훈 교수
(사회복지과)

김연아의 2010년 밴쿠버올림픽 피겨 프리경기를 다시 보게 되었다. 그 당시 경쟁 선수들을 훌쩍 넘어서는 점수로 세계 피겨 역사를 기록했던 경기였다. 9년이 지난 지금 봐도 동작 하나 하나가 ‘인간이 어떻게 저런 고난이도 동작을 그토록 아름답고 자연스럽게 수행할 수 있을까?’하는 의문이 들 만큼 완벽하다. 그녀를 타고난 스케이트 영재라고만 생각했던 적도 있었다. 적어도 그녀에 대한 다큐멘터리 영상을 보기 전까지는 그랬다. 스케이트 동작 하나를 완성하기 위해서 같은 동작을 반복하고 또 반복하는 고된 연습과정을 보게 된 후 그녀의 경기를 바라보는 시각이 달라졌다.

김연아가 오랜 시간 혹독한 연습을 견디게 한 동기는 뭘까? 어린 시절 그녀를 지도했던 코치들의 공통된 평가는 그녀의 승부욕이다. 인간행동의 동기를 단순하게 ‘경쟁’이라는 하나의 요인으로 설명하긴 어렵겠지만 적어도 경쟁 없이 장기간의 반복되는 고된 훈련을 지속하며 자신을 끝임 없이 통제한다는 것은 쉽지 않을 것이다.

사람들은 자신의 능력과 노력의 성과를 측정하고 싶어 한다. 그리고 그 성과를 가장 명확하게 설명할 수 있는 것이 경쟁에서의 승리라고 믿는다. 아무리 호기심과 성취욕이 강한 동기로 작용한다 하더라도 김연아 선수가 수 천 번, 수 만 번 같은 동작을 반복하게 했던 동기는 금메달 경쟁이라는 외부의 동기가 없이는 쉽지 않았을 것이다. 개인의 흥미, 관심, 가치부여 같은 내부 동기만으로는 허리 부상과 발 통증으로 고통 받으면서도 포기하지 않고 반복되는 고된 훈련을 견디는 에너지를 설명하기에 충분하지 않다. 올림픽 경기에서 모든 참가자에게 동일하게 금메달을 수여했다면 2010년 밴쿠버 올림픽에서 김연아의 완벽한 경기를 볼 수 있었을까?

경쟁의 에너지는 김연아에게만 해당되는 건 아니다. 우리학교의 성적부여 방법은 상대평가다. 학생들이 시험 결과와 무관하게 모두 동일한 학점을 받을 수 있다면 시험 전 날 매일 하던 게임이나 SNS를 하는 대신 책을 펴는 행동을 선택하기 쉽지 않을 것이다. 전공에 대한 지적 호기심과 흥미는 학생들이 수업시간에 한 두 시간 집중하게 만들 수는 있다. 그러나 시험을 앞두고 책의 내용을 정리하고 암기하고 또 반복해서 학습하며 밤늦도록 책상에 앉아있게 하는 힘은 경쟁이라는 환경조건이 없다면 설명하기 힘들다. 우리 과 학생들이 매년 참여하는 UCC 경진대회도 마찬가지다. 학생들은 UCC 초안을 작년 수상작과 비교하면서 수정하고 또 수정한다. UCC 제작에 참여하는 것에 의미를 부여한다면 어느 정도에서 끝내고 말 일을 다른 팀과 비교하며 반복해서 편집하는 모습을 보며 UCC 활동이 전시회가 아니라 경진대회로 운영되는 이유를 충분히 이해할 수 있다.

치열한 경쟁에 대한 부정적인 시각도 많다. 경쟁사회의 부작용으로 우울증, 불안증, 조울증 등 물질적 풍요로움과 무관하게 인류는 불행하다는 주장도 사실이다. 대한민국의 경쟁문화에 대한 비판도 이 중 하나이다. 우리는 치열한 삶의 결과로 고속 성장하여 여기까지 왔다. 가까운 동료들과 경쟁하며 대한민국 안에서 경쟁하며 이웃나라와 경쟁하며 전 세계와 경쟁하며 지구에서 가장 가난한 나라에서 부강한 나라들과 우열을 겨루는 현재의 위치에 오르게 되었다. 치열한 경쟁의 영광스런 결과와 동시에 이로 인한 부작용에 행복하지 않은 나라이다.

요즘 외고, 자사고, 과학고 등의 특목고를 모두 없애겠다는 취지 중의 일부도 경쟁사회의 문제로 부터 아이들을 자유롭게 해주자는 것이다. 하지만 우리 피에는 경쟁의 본성이 강하게 흐르는 듯하다. 그래서 다른 모든 생명체들을 물리치고 인류를 여기까지 오게 이끌었다. 아마 아무리 인위적으로 막으려 해도 인류는 경쟁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을 것이다. 우리에게는 경쟁을 통해 성장하려는 유전인자가 흐리고 있기 때문이다.

2010년 밴쿠버올림픽에서 클린 경기 후 김연아 선수가 흘리던 눈물의 의미는 인간의 한계를 넘는 고된 훈련을 통한 성취의 눈물이었다. 그리고 그 장면을 바라보는 우리도 시간과 장소를 넘어 늘 가슴으로 공감하며 잠재력을 모두 끌어내어 최고의 경지로 올린 그녀의 노력에 인간승리의 박수를 보낸다.

인간은 자신의 잠재력을 최대한 소모하여 의미 있는 성취를 하고자 하는 본능적 욕구를 가지고 있다. 자아실현의 욕구이다. 이러한 본능으로 인해 끝임 없이 자신을 경쟁 속에 몰아붙이며 자기만족을 추구한다. 경쟁 속에서 몸과 마음으로 몰두하고 노력하여 성취하는 환희의 경험을 통해 살아있다는 만족을 느낀다. 그리고 이러한 삶은 살아오고 성취한 김연아에게 감동하며 기립박수를 보내는 것이다. 그래서 인류는 지금 이 순간에도 인가승리의 역사를 계속 써내려가고 있다.